서적, 그리고 사상

베르나르 베르베르, 신

21세기페스탈로치 2010. 2. 11. 21:37

'신'선했다.

그런 식의 우주관을 상상못했던 것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내가 생각했던 우주관과 신(神)관, 그리고 종교관에

가장 가깝, 아니 거의 일치하는 책이 이 '신'이다

그리고 어찌보면,

이런 식의 세계는 좋지 아니한가.

이 세상에 가장 끔찍한 형벌은

프로메테우스의 형벌도 아니요

하데스의 지옥에 가는 것도 아니요

이 생애 이후 '無'가 되는 것이다.

그만큼 혹독한 형벌이 어디있단 말인가.

결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나는 이런 우주관을 예전부터 생각해 오고 있었다.

내가 특정종교를 못 믿는 것(깊이는 아니지만, 교회도 다녀봤고 절에도 다녀봤다)은

이런 이유때문이다.

물론 이런 나의 우주관이, 나의 독창적인 것은 아니지만,

그동안 인류가 쌓아온 지식들을 나 나름대로 '정리'한 것은 사실이다.

고로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총괄적인 우주관은

비록 내 이전에 이 '지구'에 살다간 사람들의 지식의 모음이긴 하지만,

그 '전체'를 누구로부터 '수여'받은 건 아니다.

(전체는 부분의 합보다 크다고 하지 않은가)

내 우주관이 다른 우주관보다 더 형이상학적이거나 정답에 가깝다거나 더 뛰어나다는 것은 아니다.

(어떻게 '감히' 그런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사상의 다양성 측면에서도 그렇지만, 신에 대한 나의 생각이 옳다하는 자만할 수 있는가의 문제에서도 그럴수는없다)

 다만, 나와는 전혀 관계 없는 프랑스의 한 작가와 나의 생각이, 상호간의 아무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으면서도 거의 똑같이 성립될 수 있었다는 건,

이것도 '우주의 존재형상에 대한 하나의 가능성'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나는 그냥 내 머리속에 남겨 놓은 우주관일 뿐이고

이걸 이렇게 표현해내는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천재가 아닐까 한다.

 

 다만, 아쉬운 점이 몇 가지 있다.

 우선, 작가는 광물이 1 식물이 2  동물이 3 인간이 4의 의식수준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5이상의 의식수준은 그렇다손 치더라도, 어떻게 인간이 식물이나 동물보다 '뛰어난' 존재라고 생각할 수 있다는 말인가. 물론 지금 인간이 지구를 '지배하는 듯'보이지만, 아니 설령 '지배'의 개념에서 볼 때 그것이 사실이라고 해도, 지능과 사고(思考)의 수준이 높다는 이유(이나마도 인간이 동식물의 의식수준을 잘 몰라서 그들의 수준이 인간보다 낮다고 생각한다고 가정할수도 있다.)만으로, 어떻게 인간이 높은 수준이라고 '단정'할 수 있는지. '지능'의 문제를 조금만 벗어나도 이야기는 달라지는 데 말이다. 즉, '지능'이 기준이라면 인간이 높은 수준일 수 있지만. 단순하게 '체력'이라든지 '강함'의 척도로 보면 인간은 낮은 축에 속한다. 인간이 높은 수준이라고 단정지을수 있는가.

 둘째, 잘 보면, 오리엔탈리즘을 느낄 수 있다. 작가는 그것을 피하기 위해 중간중간 다른 민족, 다른 국가의 신화 이야기도 써놓았지만, 결국 서양 위주로 돌아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표면적으로, 신이 그리스신화라니. 잘 생각해보면 결국 '그리스로마인의 신화가 옳다'고 주장하는 것 처럼 보인다. 차라리 크리스트교 이론이라면 좀 나을지도 모른다. 제우스를 8의 존재로 내세웠다는 것은, '신화'단계에서 부터 서양이 옳았다는 것 아닌가. 그리고 또한, 18호 지구의 삶 역시 지구의 '미국'이나 '로마'로 대변될 수 있는 나라들이 더 우세하게끔 보여줬다. 동양에 해당하는 나라는 존재하지 않았거나 이렇다할 활약을 보이지 못했다. 미카엘을 포함한 5명의 동지들이 올림푸스를 지나 '신'이 있는 곳으로 갈때 '미지의 동방'으로 간다는 표현이 있다. 번역상의 차이일수도 있지만, 만약 불어판도 저렇게 쓰여있다면, 심각한 오리엔탈리즘이다. '동쪽'으로 간다지 않은가. 또한, 이 오리엔탈리즘은 단순히 지구를 넘어 우주로 뻗어나간다. 어떻게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가 '준거'가 된단말인가. 그럴 가능성이 아애 없는 건 아니지만, 지금 우리가 사는 행성이 많은 행성들 중 '원조'라고 자부하는 것 자체가 오리엔탈리즘의 전 우주화가 아닐런지. 제우스가 8의 존재라는 것은, 그리스로마문화를 기반으로 하지 않는 민족뿐만 아니라, 우주에 있는 모든 다른 생명체들까지 하나 아래로 보는 것이다. (그리스 신화가 우주 전체의 신화를 대변한다지 않은가.)  셋째, 18호 지구의 역사는 1호 지구의 역사의 복사판이었다. 작가는 결말부에 가서 각 지구의 역사가 같을 수 밖에 없다고 이야기하였지만, 그 정도의 상상력이라면, 1호 지구의 역사를 뛰어넘는 무언가를 보여줄 수 있었을텐데, 결국 1호 지구의 역사를 뒤섞어놓은 것 뿐이었다. 미카엘의 돌고래족은 유대인을 연상케하고, 곰족은 러시아+이탈리아를, 독수리족은 미국, 상어족은 독일 등, 한 종족에 몇가지 국가의 역사를 섞어놓은 경우도 있었지만, '독창적'인 경우는 없었다.

 

 마지막으로, 몇 가지 모순점이 보인다.

 '천사들의 제국'에 따르면, 한 영혼이 그 다음 생애를 '결정'할 수 있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미카엘 팽송은 '타나토노트'로 태어나길 원했다는 말인가? 미카엘의 tanatonaut의 직전의 생애가 끝났을 땐, 'Astronaut'라는 개념도 없는 시기였는데, 그런 삶을 결정했다는 것이 가능한가, 18호 지구의 '델핀'은 '자기의 신을 인간세계에서 만나는 삶'을 결정했단 말인가? 프레디 메예르는 역시 '비행기'의 개념조차 없던 시절에 천국에 올라가서, '영계탐사를 하다가 영계의 전투가 벌어질때 다른 사람들을 위해 희생하는 죽음'을 택했다고? 큰 모순이 아닌가 싶다.

 또한, 자크 넴로드는 '깨달은 자'로 다시 인간세계에 내려가서 '은비'라는 인물이 되었다. 그런데 그녀가 한 일이 무엇이 있는가? 제5세계를 만든 것? 그건 코리안폭스가 시작했던 일이었고, 설령 그녀가 거기 일조를 했다고 해도 그 일의 비중은 크지 않았다. 물론 10의 존재, 111의 존재의 관점에서 보면 5의 의식수준을 가진 은비가 해야할일이 '큰 일'이 아닐 수도 있지만, 600점을 넘겨서 하나 위의 수준에 존재하는 영혼들이 드물다면, 그 수준에 도달한 '은비'는 더 큰 일을 했어야 하는 것 아닐까.

  그리고, 18호 지구에서 푸르동과의 재회 이후, 미카엘은 도망쳐서 사고사한 것으로 위장했다. 그런데 미카엘이 18호 지구 안에서 불사의 존재라는 건 푸르동도 아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는지 큰 모순이 아닐 수 없다.

 

이런 허점을 보여주긴 하지만, 역시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타나토노트','천사들의 제국','신'은 뛰어난 시리즈물이다. 손에서 책을 놓지 못하게 할 정도로. '신'이 후반부로 가면서 조금 실망스러운 부분을 보여주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이 작품들은 엄청난 상상력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차원 밖에는 더 큰 차원이 있다'는 그의 우주관 답게, 소설도 '차원 속에 더 작은 차원들'을 많이 가지고 있다. 그러면서도 하나로 연결되는 플롯을 구성해 낸건 가히 '천재적'이라고 보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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